악기의 특징

instruments du samulnori

꽹과리

꽹과리는 쇠, 매구, 깽매기, 깽쇠, 광쇠, 꽝쇠, 소금(小金), 동고, 쟁 따위로 불리며 흔히 꽹과리를 치는 사람을 쇠치는 사람(쇠치배)이라고 부른다. 앞치배들 가운데 맨 앞에서 쇠를 치는 사람을 ‘상쇠’라 하는데,상쇠는 풍물굿패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쇠는 놋쇠를 원료로 만드는데, 요즈음에는 금이나 은을 섞어 쓰기도 한다. 놋쇠는 구리와 아연을 섞어서 만든 것으로 구리의 합금 비율이 높으면(60∼70%) 소리가 높고 맑게 나지만, 아연의 합금비율이 높거나 납을 섞어서 만들면 소리가 낮고 탁하게 나며 울림이 헤퍼서 오래 가지 않는다. 꽹과리의 크기는 지름이 대략 21cm(7치), 둘레 부분은 높이가 3.6cm(1치 2푼) 정도이다. 쇠채로 쇠의 가운데와 전두리 (쇠의 테두리) 사이를 친다.

꽹과리 채의 길이와 크기도 지역이나 굿을 치는 목적에 따라 다르다. 특이한 것은 경북 빗내 진굿의 쇠채는 다듬이 방망이를 쇠채 모양으로 깎아서 만들어 쓰기도 하며, 옛날 어른들은 북채나 막대기로 쇠를 치기도 하였다. 쇠를 칠 때는 한 손 (오른손잡이는 오른손에 해당함)에 쇠채를 잡고 쇠를 쳐서 소리를 내고, 한 손은 쇠를 잡고 중지, 약지, 무명지를 쇠에 대었다 떼면서 쇠소리의 깊고 얕음과 음색조절을 한다. 음색에 따라 수꽹과리, 암꽹과리로 나뉘는데 수꽹과리는 소리가 야물고 높으며 암꽹과리는 소리가 부드럽고 얕다. 수쇠와 암쇠가 서로 받아치며 하는 놀이는 마치 암새와 수새가 서로 이야기하듯 소리가 잘 어울린다. 꽹과리의 유래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신라시대 때 만들어진 듯하고, 다른 한 가지는 고려 공민왕 때 주나라에서 만들어져 중국 명나라 때 들어왔다는 기록이 있다. 꽹과리는 장구와 아울러 율동악기로서 으뜸인데 옛날에는 군악이나 정악, 무악, 풍물굿 등 두루 쓰였으나,풍물굿에서 자극적이고 충동적인 가락으로 사람의 느낌을 고조시키고 흥을 돋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쇠로 만드는 타악기의 하나로 본래의 소리는 ‘정'(鉦)이나 징이라는 이름으로 굳어졌다.
옛 군악인 고취악에서 쓰던 까닭으로 고취징이라는 별명도 있고, 그 밖에 나, 금라(金羅), 금(金), 대금(大金), 금정(金鉦) 등의 이름이 있다.
쓰임새는 넓어서 군악의 행진곡을 비롯한 무악과 풍물굿 등에 쓰이며 절에서도 쓰인다.

징은 고려 공민왕 때 중국 명나라에서 들어왔다는 기록이 있고, 전남대학교 호남문화연구회 박물관에 있는 고려시대의 징으로 보아 징의 역사는 고려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고 보인다. 아울러 그 쓰임의 단순함으로 미루어 볼 때, 꽹과리보다 먼저 쓰인 것으로 추측된다. 징의 울림이 직선적으로 하강하는 느낌을 주는 것은 좋지 않고, 울림이 몇 고개를 넘어서 끝이 올라가서 맺는 것이 좋다.

징의 크기는 대략 지름이 약 36cm, 둘레의 높이는 10cm이며, 징의 쇠 두께는 3mm 정도이다. 징은 장단을 바르게 쳐주는 것이 중요하며, 사물의 가락(쇠, 장구, 북, 소고)을 모두 감싸서 멀리 울려 퍼지게 한다. 풍물굿 악기 가운데 가장 은은한 소리를 내며 포용력이 있는 악기라 할 수 있다. 징을 칠 때는 징 채를 짧게 잡고 징의 한가운데를 부드럽게 밀듯이 쳐야 소리가 되바라지지 않고 웅장한 소리를 낸다. 징은 연주가 다양하지 못한 단점이 있으나 바로 그런 이유로 발림이 다양하고 여유가 있어 춤으로 신명을 표 출하기가 좋다. 징을 치는 횟수에 비해 그 역할은 아주 중요하다. 징이 정확한 박으로 제대로 받쳐 주지 못하면 다른 치배의 장단이 어지러워지고 불안하며, 장구나 쇠, 북 모두가 제 기량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한다. 옛날에는 징을나무틀(ㅏ자모양)에 걸고, 그 나무틀을 왼쪽 몸에 대고 끈으로 묶어서 다니기도 하였다.

장구

죽 타악기의 하나로 양편 머리가 크고 그 허리가 가늘다 하여 세요고(細要鼓)라고도 한다. 이름에 대해 여러 의견이 있으나, 한자로 지팡이장(杖)과 북고(鼓)를 쓰면 장고가 맞고, 노루장(獐)과 개구(拘)를 쓰면 장구도 맞다. 풍물의 현장을 조사하는 가운데, 전북 진안 김봉열 선생님과 강원도 강릉 박기하 선생님도 옛날부터 어른들께서 장구의 가죽을 노루가죽과 개가죽으로 썼다 하여 장구가 맞다고 한다. 사람들 사이에서도 보통 장구라고 많이 부른다. 여기서도 장구로 통일해서 부르기로 하였다.

왼쪽(북편, 궁편)은 말가죽이나 소가죽, 노루가죽을 대 가죽이 좀 두껍고 소리가 낮으며, 오른쪽(채편)은 보통 말까죽이나 개가죽을 대 가죽이 얇고 높은 소리를 낸다. 가죽으로는 개가죽이 소리도 크고 제일 좋다. 장구의 통은 사기, 기와, 쇠, 나무, 바가지, 양철 따위를 쓰는데, 보통 미루나무와 오동나무를 많이 쓰고, 오동나무가 가벼우며 소리도 좋다.

장구통의 궁통과 채통을 이어 주는 곳을 조롱목이라 하는데, 조롱목이 너무 넓으면 소리가 헤프고, 조롱목이 너무 좁으면 소리가 되바라진다. 장구통을 만드는 방법에 따라 통째로 깎아 만든 통장구와 나무조각을 깎아서 보통 두 쪽 내지 세 쪽으로 맞춘 쪽장구가 있다. 철테(원철) 둘레에 8개의 쇠고리(쇠갈고리, 구철)를 걸어 무명을 꼬아 만든 줄(숫바, 홍진사, 축승)로 얽어 매고, 죔줄(축수, 부전)을 좌우로 움직여 소리를 조절한다.

장구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고려 문종 30년(1076년)에 대악관현방(大樂菅絃房)을 정할 때 장고업사 (杖鼓業師 : 장구 연주자라는 뜻)가 있었다고 한다. 지금의 장구보다 작은 크기의 장구를 요고(腰鼓)라
하고 인도에서 만들어져 중국 남북조 시대를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왔다고 하며, 고구려 집안현 제4호 무덤벽화와 신라 상원사 동종의 아래쪽에 그려진 주악도, 그리고 감은사지 청동제 사리기 기단에 그려진 그림(통일신라 신문왕 2년, 682년)에서 볼 수 있다.

장구가 요즘에 쓰이는 형태로 크기가 커진 것은 고려 때로 추측되며, 장구가 중국에서 만들어져 우리나라로 전해진 것에 대하여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중국 한 무제 때 만들어져 고려 예종왕 9년 송나라에서 새로운 악기가 들어올 때 장고이십면(杖鼓二十面)이 포함된 기록이 있고, 또 다른 하나는 장구가 중국 당나라 때부터 쓰여 고려 때 들어왔다는 견해가 있다.『고려사악지』의 [당악기조], [향악기조]에 각각 장고가 들어 있고, 조선 세종 때 『악학궤범』 에 의하면 장구 (장고라 쓰였지만 여기서는 장구로 통일함)가 당악과 향악에 어울려 쓴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장구는 처음에 당악 (당에서 들어온 음악), 향악(옛날부터 내려오는 우리의 음악)에 쓰였으며 지금은 정악, 산조, 잡가, 민요, 풍물굿, 무악 등 거의
쓰이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이다. 그리고 장구의 옛날 꼴로 생각되는 물장구, 모래장구도 있었다고 한다. 장구의 채로는 궁채(궁글채)와 열채(가락채)가 있는데, 궁채는 대나무 뿌리를 잘 삶아서 똑바로 편 다음, 끝부분에 박달나무와 같이 단단한 나무 또는 뿔을 끼워서 만들고, 열채는 대나무를 깎아서 만든다. 두 손으로 치기 때문에 가장 다양한 소리를 내 어깨춤이 절로 나게 만든다. 분위기를 흐드러지게 하고 풍성하게만드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악기이며, 민요나 춤 장단을 칠 때는 궁편을 손으로 치기도 한다. 장구를 메는 방법도 지역이나 사람마다 다르고, 그 나름의 맛을 제각기 갖고 있다.

꾸밈새가 간단한 까닭으로 그 역사가 오래되고 세계 어디에서나 그 발생을 볼 수 있으며 각 민족의 특징을 지니며 발달했다. 곳과 쓰임에 따라서 여러 가지 종류가 전해져 내려오는데, 풍물굿의 악기 가운데에서 북은 가장 오래된 악기다.

그 까닭은 청동기시대 이전의 목축시대에 만들 수 있는 가장 간단한 악기기 때문이다.

풍물굿에 쓰이는 북은 어깨에 메기가 간편하고 소리가 옹골찬 것을 주로 쓴다. 오동나무나 미루나무의 가운데를 파내고 양편에 소가죽이나 말가죽을 대고 양쪽 가죽을 줄로 엮고 조여서 만든다. 요즘은 나무판을 엮어서 만드는 것이 대부분이다.

북은 잔가락을 운영하는 것이 주가 아니므로 다양한 가락의 연주보다는 박을 힘있게 짚어 가면서 그 기상을힘찬 춤으로 펼쳐 나간다.

북은 치는 방법에 따라 보통 왼쪽 어깨에 메고 치는 외북과, 북을 허리에 북끈으로 고정시키고 두 손에 두 개의 북채를 잡고 치는 쌍북이 있다.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춤 위주의 외북을 치고, 쌍북은 상대적으로 가락에 치중한다.

전라도 지방에서는 장구가 발달하여 북소리를 장구의 궁편으로 대신하는 경우가 많으나, 경상도에서는 북이 발달하여 장구의 역할이 감소한다. 따라서 북놀음이나 북가락은 경상도 지방에서 많이 발달되었으며, 전남 진도의 북춤 에서는 두 손에 북채를 들고 추는 춤사위가 뛰어나다. 북의 크기도 곳에 따라 다르다. 대체로 경상도 북은 크고 넓으며 전라도 북은 작은 편이다. 북치는 사람의 자리도 경상도에서는 꽹과리, 징 다음에 선다.